하루키처럼 자기소개하기

  1. 어떤 사람의 말을 많이 듣거나 보게 되면 그 사람을 잘 따라 할 수 있게 된다. 나는 요즘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를 연달아 _ 읽었고, 그의 말투와 일본어 번역체를 잘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2. 자신을 소개하는 자기소개에 남의 말투를 빌리는 것이 혜린스럽다고 할까요. 하루키의 소설은 읽지 않고 에세이만 읽은 채 흉내 내는 것도 엉성한 게 혜린스럽습니다. 특징이 없어 유명 소설가의 말투를 흉내 내면서도 그것을 혜린스럽다고 명명하는 것은 특징이 있다는 것일까요? 보기만 해도 사람을 알 수 있으면 좋을 텐데.
  3. 인터넷에서 녹아버린 동물들을 검색해보셨나요? 안 해보셨다면 구글에 한 번 검색해보시길. 덥거나 물에 들어가면 동물들은 흐물흐물 녹게 되는 것 같습니다. 축 늘어진 모습이 정말 귀여워요. 저는 인터넷에서 하찮고 귀여우면서도 이상한 사진을 저장하곤 한답니다. 얼굴 같은 채소라던지, 채소를 크게 키우는 영국 할아버지라던지...
  4. 자기소개서엔 부정적인 이야기를 쓰지 말라고들 하는데, 저는 모순덩어리입니다. 책 만드는 것은 좋아하지만 글 넣는 것을 싫어한다든지, 먹는 것에 관심이 많으면서도 요리는 하나도 못한다든지 같은 것 말이죠. 앗 다시 보니 책과 글, 먹기와 요리하기 둘 다 완전 같은 것은 아니군요. 싫어하거나 못할 수 있지라는 변명이 생겨납니다. 이래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런지.
  5. 과제를 안 하거나 대충하는 날에는 꼭 꿈에서 혼이 나더라구요. 자는 동안 양심이 스스로 혼내는 것일까요? 그렇지만 혼이 난다고 해서 과제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니 그냥 푹 자게 해 주었으면.
  6. 좀비 영화 좋아하시나요? 영화가 끝나면 한 번쯤 내가 저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할까 생각해보지는 않나요? 저는 바로 물려서 좀비가 되어버릴래요. 역경과 고난에는 버티지 않고 바로 픽 꺾여버리는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지금 쓰는 자기소개서에는 멋진 다짐이 필요하므로 흐음 타이포그래피를 좀비라고 생각하면...이젠 백신을 찾는 탐험대에 지원하겠습니다. 열심히 싸워야지.
  7. 최근에 좋아하는 영화는 홍상수와 에릭 로메르, 짐 자무쉬 감독의 영화입니다. 감독 도장 깨기를 하고 있는 중이에요. 박찬욱, 자비에 돌란, 웨스 앤더슨 나라의 도장은 다 모았답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엔 변태 같은 연출과 확고한 이야기가 있는 영화를 좋아했던 것 같기도 하고...요즘도 좋아합니다만. 확실히 최근 본 영화들은 흘러가는 듯 하는 분위기네요.
  8. 어쩌다 보니 이번 학기는 공강도 없고 매일 10시 수업인 시간표가 되었답니다. 월요일엔 5시에 마치고 화요일은 4시, 수요일은 3시같은 패턴으로 금요일 1시까지 이어져 계단 모양입니다. 저는 이 시간표를 ‘주말로 가는 계단’이라고 부른답니다. ‘주말로 가는 계단’이라고 부른답니다. 금요일은 프린트실에서 근로를 합니다. 공강을 포기했지만 프린트실이란 공간을 워낙 좋아해서 꿈의 직장에 다니는 기분이랍니다. 비록 첫날부터 키보드가 사라지기도 했지만요. 프린트실에서 키보드가 없어지다니. 물론 다신 찾긴 찾았지만...
  9. 보조개쇼 해보셨나요? 보조개가 없다면 아쉽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보여드릴 수도. 만지는 거니까 느끼게 해드릴 수도라는 말이 맞을까요? 사실 제가 가지고 있는 개인기랍니다. 10초 동안 볼을 눌러가며 꾹 웃고 있으면 됩니다. 어느 쪽을 만지는 지는 관객의 마음이랍니다. 그저 웃고만 있으면 되니 편리합니다.
  10. 게으르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벌써 9월도 반이나 지났습니다. 1년을 빠르게 보내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많이 푹 자고 느리게 먹으면 됩니다. 둘 다 제가 잘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오래 자기와 느리게 먹기에는 겸손을 떨지 않아도 될 정도로 전문가랍니다. 남은 이번 년도 아마 이렇게 보낼 것 같은데...시간은 양보다 질이 중요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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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유혜린